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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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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용사' 복귀신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특별했다

2020.07.23 조회수 4273

[70년 기다림, 감동의 70분]

6.25 전쟁 때 참전 카투사 K군번 1기생 류영봉 이등중사

 

지난 6월 2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 전쟁 70주년 행사에서 ‘늙은 군인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70년만의 귀환’, 6.25 때 장진호 전투에서 희생된 국군 유해 7구가 송환되면서 시작된 70분간의 행사 곳곳에서 눈물이 번졌다. 긴 기다림 끝의 짧은 만남. 그 의미를 재조명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

 

 

류영봉 참전용사.

 

 

"충성! 신고합니다. 이등중사 류영봉 외 147명은 2020년 6월 25일 부로 조국으로의 복귀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70년만의 복귀 신고였다. 6.25 참전용사였던 대표 신고자 류영봉(88세)씨는 K로 시작하는 카투사(KATUSA) 군번 1기생이었다. 이날 행사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국군 전사자 147구를 대신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복귀 신고를 한 미7사단 19연대 의무대 소속 이등 중사이다.

 

특히 신원이 확인된 국군 유해 7구는 그와 함께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용사들이었다. 그 중 1명인 고 김정용 일병은 류씨의 카투사 입대 동기였다. 김 일병은 미 7사단 49포병대대 소속으로 1950년 12월 12일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지만, 당시 전투에서 살아남은 류씨가 이날 대신 복귀 신고를 했다.

 

 

[70년만의 복귀] "아이고"... K군번 1기생의 탄성

"아이고."

지난 18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작은 딸 아파트에서 만난 류씨에게 대표 신고 소감을 묻자 짧은 탄성부터 질렀다.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과 슬픔의 표현으로 들렸다. 새하얀 머릿속에 각인된 비극의 기억을 꺼내 놓는다는 게 지금도 쉽지만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행기 속에서 유해가 나올 때마다 뭉클했어요. 7구의 유해에 차렷을 명하고 뒤돌아서면서 문재인 대통령께 신고할 때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나는 살아 돌아와서 발전된 우리나라를 느끼면서 살고 있는데, 그 분들은 얼은 땅에서 전사했습니다. 미안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류씨는 "지금도 어딘가에 묻혀있을 국군 전사자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가 있다는 게 반가웠다"면서 "그대로 묻히면 아무도 모를 텐데, 정부가 끝까지 관심을 갖고 유해까지 봉환해줘서 고마웠다"는 소회를 밝혔다.

 

 

[7구의 유해] 총알 튀고 포탄... 12만 명에 포위당한 2만 명의 생사

류씨는 이날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와 악수할 때 잠시 70년 전의 흥남철수작전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1950년 12월, 미군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이 때 북한의 전략 요충지인 강계를 점령하려다가 미 2개 사단이 장진호에서 포위돼 해병대 병력 4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과 함께했던 수많은 한국인 카투사도 전사했다.

 

"27일 동안 12만 명의 중공군에 포위를 당했습니다. 우린 2만 명이었죠. 저는 위생병이었는데 총알이 튀고 포탄이 쏟아지는 곳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바빴습니다. 군화를 벗은 적이 없고, 잠도 거의 자지 못했습니다. 얼어 죽은 동사자만 1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나중에 5천 명 미 해병대 지원병이 와서 탈출에 성공했죠."

 

거의 절반에 가까운 병력을 잃은 미군에 포함된 류씨가 당시 흥남부두에 도착했을 때 수십만 명의 피난민들로 인산인해였다고 한다. 그해 12월 15일부터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철수작전을 펴기 위해 부두에 193척의 군함도 대기하고 있었다. 군 병력만 철수하기 위한 대규모 해상 작전이었다.

 

"군인들만 탈 수 있는 군함이었습니다. 피난민들은 태워달라고 아우성을 쳤죠. 우리 카투사들이 미 10군단장인 에드워드 알몬드(E. Almond) 육군소장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피난민 중에 일부라도 태워달라고 말입니다. 알몬드 소장은 군함에 있던 대포와 탱크를 부두에 내려놓고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태웠습니다. 대포와 탱크는 부두와 함께 폭파했죠."

 

류영봉 참전용사.

 

 

[70분의 만남] '기적의 빅토리아 호'와 문재인 대통령

1905년 12월 23일, 흥남부두를 떠난 마지막 군함은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였다. 60명이 정원이었지만, 모든 군수물자를 버리고 정원의 230배가 넘는 14000명을 태우고 다음 날인 24일에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이 때문에 흥남철수작전의 상징이기도 한 빅토리아 호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불러일으킨 '기적의 배'로도 불린다.

 

류영봉씨는 "나중에 안 사실인데, 군함에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타고 있었다"면서 "대통령과 악수를 할 때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당시 문 대통령의 부모 등에 업혀서 거제도로 왔던 아기는 문 대통령의 누나 문재월씨이고, 1953년 1월 문 대통령이 태어났다.

 

이날 행사에서 신원이 확인된 장진호 전투 전사자 7명과 문 대통령, 그리고 흥남철수작전 사이에는 아주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6월 2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했을 때에도 첫 공식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기념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감사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2년 후 저는 빅토리아 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서울공항에서 진행된 70분간의 행사는 류씨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아주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70년 전] 'K 군번' 1기생의 거듭된 상륙작전

구순(九旬)을 앞둔 류씨는 1950년 8월에 대구에서 입대했다. 류씨가 일본 후지산 밑에 있는 UN군 미 육군 제7사단 훈련캠프에서 받은 군번은 K-110-1755. 유엔군에 편입된 카투사 1기였다. 그는 의무중대에 배속됐고, 캠프에서 3주간의 기초훈련을 마친 뒤 부산항으로 돌아와서 상륙작전 예행연습을 한 뒤 9월 15일 새벽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K군번을 받고 처음으로 수행한 작전이었다.

 

류씨는 다시 부산에 내려갔고, 11월 1일 군함을 타고 함경남도 이원에 상륙했다. 북청을 지나 후치령을 넘어 풍산으로 올라갔다. 조선시대에 귀양을 보냈던 산수 갑산을 지나 11월 20일 압록강 해산진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군은 "이제 통일이 된다", 미군들은 "이제 집에 돌아간다"고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즈음 중공군 참전 소식을 들었고, 미 해병 1사단과 류씨가 소속된 미 7사단이 포위를 당했다. 해산진 시민들의 도움으로 일제 강점기에 사용됐던 20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밤새워서 미 7사단이 도착한 곳이 장진호였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그곳에서는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에 포위를 당해서 고전을 하고 있었다.

 

27일 동안 쏟아진 포화 속에서 살아남아 흥남부두에서 탈출에 성공한 그는 "나는 행운아였다"고 말했다. 그 뒤에도 그는 중동부 전선과 태백산 탈환 작전에 참여했고, 횡성과 춘천, 화천 전투에 참가하면서 국군 부상자뿐만 아니라 중공군 부상자도 치료했다.

 

그는 격렬했던 백마고지 전투와 폭찹(Pork Chop Hill) 고지 전투에도 참여했다. 밤에는 중공군이 피리와 나팔을 불며 인해전술로 공격해서 점령을 당했고, 낮에는 미군이 점령을 하는 등 6번 넘게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격렬한 전투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폭찹 고지에서 휴전을 맞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됐을 때 저는 연천 백마고지 옆의 폭찹고지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고지와 고지를 사이에 두고 300여m를 마주보고 중공군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중공군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죠."

 

 

[70년 그 후] 70분간의 만남 "고맙고, 미안했다"

류씨는 휴전이 된 뒤에 한국군에 편입되는 카투사 통역장교 임관 시험에서 합격했지만, 1954년 7월 4일자로 명예제대를 택했다. 그는 1958년에 미8군 대구병원에 취업을 해서 2004년까지, 정년을 연장하면서 45년 동안 간호사로 활동했다. 그동안 결혼해서 2남 2녀를 뒀다.

 

퇴직한 뒤에도 무려 6000시간 동안 병원에서 봉사를 해오고 있다. 90살을 눈앞에 둔 K군번 1기생이 지금도 쉬지 않고 봉사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의 표현이자, 의무라고 여기는 듯했다.

"당시 전우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죠. 다시는 비극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류씨가 장진호 참전 전우를 대신해 대통령께 복귀신고를 했던 '70분간의 만남'. 그는 70년 전의 전우를 만나도록 노력한 정부와 살아 돌아오지 못한 7구의 장진호 참전 용사들을 향해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런 그에게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전쟁의 교훈은 무엇인지'를 마지막 질문으로 던졌다.

"평화라고 할 수 있지요.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평화를 지켜야 합니다."

 

 

[70분의 의미] 영웅에 대한 경례

지난 6월 25일에 송환된 147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이 평안남도 개천,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 평안북도 운산군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였다. 한미양국이 공동으로 진행한 정밀 감식을 통해 국군전사자로 확인됐다. 공군의 최신예 공중급유기를 미국 하와이로 보내서 중간 기착 없이 한 번의 비행으로 영웅들의 유해를 직접 송환했다.

 

한국방공식별구역 진입 시에는 6.25전쟁 당시 참전하였던 101전투비행대대 F-5와 102전투비행대대 F-15K, 103전투비행 대대 FA-50의 조종사들이 선배전우들의 귀환을 맞아 엄호 비행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70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귀환한 장진호 참전용사 7구을 포함한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를 직접 맞을 때 '늙은 군인의 노래'(김민기 작사 작곡)가 흘러나왔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30년/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6.25 전쟁 70주년 행사장에서 가수 윤도현씨가 부른 이 노래는 박정희 정권 당시에 국방부 장관이 지정한 '1호 금지곡'이었다. 군의 사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70~80년대에 '늙은 투사의 노래'로 개사돼서 민주화 투쟁의 거리에서 많이 불리기도 했다.

 

이날 행사의 주제는 '영웅에 대한 경례'였다. 문 대통령은 이 곡의 가사처럼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인 참전용사들의 유해를 향해 경례를 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끝까지 찾아서 최고의 예우를 갖추겠다는 각오이자 평화를 위한 다짐으로 읽혔다. 유해 봉환식에서는 '6.25의 노래'도 제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