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6ㆍ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메뉴

ENGLISH

아카이브

문재인 대통령 '배지 번호' 122609번... "울컥했다"

2020.11.28 조회수 1581

[70년 기다림, 감동의 70분] 진성민 이천세무고등학교 교사(6.25 국민 서포터즈 공동단장)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

 

지난 6월 2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 147구가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날 70분간의 행사 곳곳에서 눈물이 번졌다. 긴 기다림 끝의 짧은 만남. 그 의미를 재조명했다. <편집자말>


"울컥하더라고요. 전사자 유골함이 비행기에서 나올 때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다시 돌아오시는 듯했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 '국민 서포터즈' 공동단장인 역사 교사 진성민(32. 이천세무고등학교)씨는 지난 6.25전쟁 70주년 행사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만큼 강렬했다는 뜻이다. 진 교사에게 6.25 전쟁은 '동족상잔'이라는 추상어가 아니라 구체어였다. 곁에서 지켜본 '할머니의 70년 기다림'이자, 교단에서 평화를 가르칠 때 늘 꺼내 쓰던 산 역사 교과서였다.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본부에서 6년차 역사교사인 그를 만났다.

[태극기] 배지 12만2609개, 이 숫자의 의미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 ‘국민 서포터즈’ 공동 단장인 역사 교사 진성민 씨(32, 이천세무고등학교)가 '태극기 배지'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하고 있다. ⓒ 국가보훈처 박병주

 
"그날 대통령께서도 이 배지를 달았어요."

 

진 교사는 왼쪽 가슴에 단 배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가 올해까지 유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 전사자 12만2609명의 호국영웅의 헌신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벌였던 '끝까지 찾아야 할 122609 태극기 캠페인' 때 받은 것이었다. 캠페인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로 젊은층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일련번호가 매겨진 이 배지의 12만2609번째, 최종 수령자였다. 진 교사가 이 말을 시작한 이유는 이날 행사에서 가슴 뭉클하게 느꼈던 순간과 교차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보는 앞에서 국군 전사자 147구가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중 신원이 확인된 국군 유해 7구는 장진호 전투 참전 용사들이었다. 비행기에서 태극기가 덮인 유골함을 들고 내려올 때 군인의 시선이 닿는 모습, 즉 참전용사 유해 발굴 시 태극기를 덮고 묵념을 할 때 시선이 닿는 모습을 형상화한 게 배지 디자인이었다.

 

"유골함이 조국의 품으로 안길 때 늙은 군인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때 유골함을 든 군인들의 눈에 비친 태극기가 저와 문재인 대통령의 가슴에 단 태극기와 같은 모양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께서 마지막 배지를 단 이유는 국가가 마지막 전사자 한분의 유해도 찾겠다는 다짐이라고 하더라고요. 최고의 예우. 이게 바로 국가의 존재 의미죠."

 

진 교사는 "이날 행사를 통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는 '우리는 당신을 기억합니다'였다"면서 "국가가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는 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각오"라고 말했다.



[아, 할머니] "엄마 어디가?"

이날 조국으로 귀환하는 전사자들을 대신해 6.25 참전용사였던 류영봉(88세)씨가 문재인 대통령께 복귀 신고를 할 때 진 교사가 떠올린 분은 외할머니였다고 한다. 그가 국민 서포터즈를 자원한 것도 외할머니 때문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뒤 35년 되던 해에 태어난 그가 비극을 자기가 겪은 일처럼 기억하는 것도 외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 때문이었다.

 

"아휴, 그 난리통에 딸내미 잃어버리고..."

올 초에 돌아가신 진 교사의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주문처럼 되뇌던 말이었다.

 

"외할머니는 황해북도 개성 옆의 개풍이 고향입니다. 1.4 후퇴 때 중공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징집을 우려해 집안의 남자들부터 피난 가야한다면서 외할아버지와 시동생을 배웅하려고 경의선 토성역에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안고 있던 딸을 시어머니에 맡기고 기차를 함께 탔답니다. 한 달 뒤엔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외할머니의 기대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결국 딸과 헤어진 뒤 70년 되던 해에 딸을 만나지 못하고 영영 이별을 했다. 외할머니는 진 교사에게 헤어질 당시 딸이 자신에게 했던 말도 자주 되뇌였다고 한다. 불안한 눈빛으로 던진 바로 이 한 문장이었다.

 

"엄마, 어디가?"

 

외할머니는 재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을 받았지만, 그 때에도 중환자여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이렇듯 진 교사가 6.25전쟁을 간접 체험한 것은 외할머니에게서 뿐만이 아니었다.

 

"대고모부님은 6·25전쟁 때 참전하셨다가 강원도 양구에서 전사하신 뒤 시신으로 돌아왔어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셨죠. 큰할머니께서는 남편을 잃으시고 조카인 저희 아버지 형제를 키우시다가 얼마 전 돌아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도 6·25 전쟁에서 머리에 포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으신 뒤 상이군인으로 제대하셨고, 국가유공자입니다."

 

진 교사는 "어찌 보면 6.25 행사 때 귀환하신 분들은 우리 할아버지들과 전쟁터에서 잠깐 스쳐지나갔을 수도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에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국민 서포터즈를 자원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 가족사이기도 한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민 서포터즈’ 공동 단장인 역사 교사 진성민 씨. ⓒ 국가보훈처 박병주

 
[교단에 서서] 전쟁의 교훈

진 교사는 교단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6.25전쟁 역사는 교과서 5~6쪽 정도로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한 교육 시간은 20여분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는 아주 각별한 순간이라고 했다. 6.25전쟁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사에 얽힌 '할머니의 70년 기다림'을 짧지만 입체적으로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북한이 6.25 때 남침을 했어라고 말하면 금방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저는 할머니와 이모 이야기를 합니다. 외할아버지가 전쟁에서 다치신 이야기도 보태죠. 학생들에게는 막연한 전쟁 이야기이지만, 6.25전쟁 세대의 트라우마에 대한 저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학생들의 공감의 폭도 커지더라고요."

 

진 교사에게 '6.25전쟁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평화"라고 대답했다. 이어 '우리는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제대로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여전히 전쟁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떤 때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냐'는 후속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도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하면 '빨갱이' '종북'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전쟁통에 생긴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겁니다. 전쟁은 70년 전에 끝이 났지만, 우리 마음속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죠. 저희 할머니처럼 이산가족이 되신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아직도 헤어진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기에 이 분들의 가슴 속 상처도 남아있습니다."

 

[70분의 의미] 희망의 근거

그는 "재작년에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이 진행될 때에는 적대적인 용어가 힘을 잃어버리고 이산가족들에게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면서 "결국 남북간의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만 6.25로 인한 상처가 아물 수 있고, 오늘 행사 때 유해로 귀국하신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값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0년간 우리가 배운 6.25전쟁의 교훈을 점수로 환산하면 몇 점을 줄 수 있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지만, 희망의 근거를 제시했다.

 

"최근 북에서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 평화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구나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다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습니다. 저는 어렵지만 한발씩 전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 교사가 70분간 진행된 6.25 행사에서 목격한 것도 희망의 근거였단다. 70주년을 맞아 남북간의 적개심을 상기시키고 아물지 않은 상처에 다시 생채기를 내기보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주었다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것,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을 최고로 예우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의의이며, 전쟁의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진 교사. 이런 그가 교단에서 미래세대 앞에 서는 것 역시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