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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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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리를 돕는 한국… 위상 걸맞은 큰 미래 봐야"

2020.11.29 조회수 1622

[6·25 70년, 아직도 아픈 상처] 참전국 대사 인터뷰 [7] 요안느 도너바르트 주한 네덜란드 대사

양승식 기자, 김은중 기자

 

"그날 우리가 기린 분들은 우리에게 삶을 준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 앞에서 숙연함을 느꼈습니다."

 

요안느 도너바르트 주한 네덜란드 대사는 지난 6월 25일 열린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참전국 대사 대표로 '평화의 패'를 받았다. 6·25전쟁 당시 사용했던 수통·반합·철모와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을 함께 녹여 만든 기념패다. 참전 22국 대사를 대표해 평화의 패를 받은 도너바르트 대사는 "6·25전쟁 70주년이라는 큰 행사에서 대표로 패를 받은 건 정말 큰 영광이었다"고 했다.

요안느 도너바르트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지난 4일 서울 중구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6·25전쟁 당시 4748명의 전투병을 파병했다. 122명이 숨졌고 3명이 실종됐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였던 1950년, 전쟁의 상흔(傷痕)이 아물지 않은 상태였지만 6·25전쟁 파병을 결정했다. 도너바르트 대사는 "공산주의와 싸우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며 "자원병으로만 구성된 병력이었지만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고 했다.

 

병사들은 겨울철 추위를 대비하지 못한 채 11월에 전쟁에 투입됐고 곧바로 한국의 강추위를 겪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네덜란드 부대는 1951년 중공군의 공세에 후퇴하던 국군과 미군이 강원도 횡성으로 철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적의 공세에 고립 위기였던 상황에서 퇴로가 확보되지 않았으면 일대 아군이 궤멸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요안느 도너바르트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지난 4일 서울 중구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도너바르트 대사는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참전국 대표로 '평화의 패'를 받았다.

 

 

하지만 참전 용사들은 이후 '잊힌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 취급을 받았다. 도너바르트 대사는 "내가 한국에 부임해 놀랐던 건 생각보다 많은 네덜란드 군인이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이라며 "네덜란드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6·25전쟁에 대한 말은 잘 듣지 못했다. 특히 당시는 세계대전 이후 온 나라가 복구에 정신을 쏟고 있던 시절"이라고 했다. 그는 "참전 용사들이 귀향했지만 전쟁 속 참화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됐던 네덜란드는 그때까지 전쟁의 상흔을 복구 중이었기 때문이다.


도너바르트 대사는 네덜란드 참전 용사들이 한국에 초대받아 전후 발전상을 보는 것에서 큰 자긍심과 보상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한국까지 먼 거리를 가족의 손을 잡고 온 참전 용사들이 많았다"며 "네덜란드에도 참전 용사를 기리는 날이 있지만 참전 용사들은 한국에 와서야 자신들이 더 빛나는 사람임을 알게 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도너바르트 대사는 "과거에는 우리가 한국을 도왔지만 이제는 한국이 우리를 돕고 있다"며 "우리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과거엔 군사적으로, 지금은 경제적으로 아주 가깝다"고 했다. 한국과 네덜란드는 내년에 수교 60주년을 맞는다. 주한 네덜란드 대사로서 한국의 발전상을 인상 깊게 봤다는 그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한 만큼 더 큰 미래를 봐야 한다"고 했다. 도너바르트 대사는 "일만 더욱 열심히, 열심히 한다고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네덜란드도, 또 전쟁을 극복하고 발전을 이룬 한국도 이제는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에 어떤 공헌을 할지 고민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공동 기획: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