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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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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함께

6·25전쟁의 학생영웅들

2020.12.23

 

6.26 70주년을 맞는 올해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터즈 - 6.25 서울을 지켜라 2편>에서는 가슴 아픈 전쟁 일화가 소개되었습니다. 


출연자 설민석은 6.25전쟁에서 싸운 학생들 3만여 명을 소개했습니다. 나라를 위험에서 구하고자 전쟁에 지원한 학생들은 17세 미만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어린 학생들은 계속되는 북한의 회유에도 결코 항복하지 않고 교전을 했으며 실탄의 여유분이 없는 상황에서는 북한군이 던진 수류탄을 다시 주워 상대에게 던지는 용맹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도 학도병은 활약했고 북한군 50~60명을 사살해 국군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음의 안타까운 사연은 전쟁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한 학도병의 편지입니다. 당시 17세였던 이우근 학도병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편지에 씁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발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님 품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아,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이우근 학도병은 이 편지를 남긴 채 전사했습니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 당시 주요 전투였던 춘천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에 관한 작전명령서 등 군사자료가 복원돼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당시 국군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을 5년 6개월에 걸쳐 복원을 완료했습니다. 복원된 원본의 디지털이미지 원문이 국가기록원 홈페이지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었는데요, 복원된 이미지의 6.25 기록물 원문 전체를 볼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후방 교란 작전으로 포항 북부 장사리에 주로 학도병으로 구성된 부대를 투입한 전투로 알려져 있는데요, 관련 기록물은 6.25 전쟁 당시 희생된 학도병을 언급한 유일한 공식문서입니다. 이 기록물의 내용 중 “육본 직할 유격대장은 예하 제1대대를 상륙 감행시켜 동대산을 거점으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 제1군단의 작전을 유리케 하라”는 명령서가 포함됐는데 여기서의 ‘유격부대’가 어린 학도병으로 구성된 부대를 의미합니다.  

 

학도병들은 6.25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9일 노량진 전투에서 처음 활약했고 이후 수원에서 비상 학도대로 조직되었습니다. 정훈국장 명의의 신분증을 발부 받았고 총 3개 소대로 편재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비상학도대로 들어가 전투에 투입된 것은 용산고등학교 학생들입니다. 학생들은 전쟁이 발발하자 급우들이 모여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했고 싸울 의사가 있는 이들끼리 규합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달이 입대할 방도가 없으니 우선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자기들도 참전하겠다고 밝힙니다. 고등학생들이 국군을 보고 가장 먼저 한 말은 “총 쏘는 법 좀 알려주세요.”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전쟁이 계속될수록 의기충천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꾸민 것처럼 앳된 얼굴에 겁에 질려 떠는 까까머리 학생은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학도병들은 처음 전장에 투입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흥분이 되어 나누어준 주먹밥을 먹지도 않고 군가를 불렀다. 두려움과 떨림이 잦아들지 않았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는 신념이 있었다.”

 

학도병들은 전쟁 초기 전시병력 수급이 어려울 때 노량진전투에 투입되는 등 전시 병력수급의 물꼬를 트는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시흥전투, 포항전투 등에서는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후 국가 전시체제가 확립되어 정상적인 병력충원이 가능하게 되자 1951년 2월 28일부로 참전 학도병들에게 복교령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1951년 4월 3일 정훈공작대의 해산을 마지막으로 학도병은 공식적인 활동을 마치게 됩니다. 하지만 참전했던 학생들 상당수가 장교로 현지 임관하거나 병사로 군번을 받아 계속해서 전투를 치렀다고 합니다. 


지금도 용산고등학교에 가면 학도병들을 기리는 서울 학도포병 참전자병비, 서울 학도병 참전기념비와 순국 학도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순국학도탑은 6.25전쟁에 참전한 용산고등학교 학생 80명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1956년 10월 23일 용산고등학교에서 건립하였습니다. 


서울 학도병 참전 기념비는 조국과 자유민주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참전한 서울 지역 학도의용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참전 55주년을 기념하여 2005년 10월 20일에 세워졌고 서울 지역 학도의용군 34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서울 학도포병 참전자 명비는 참전 65주년을 기념하여 2015년 10월 20일에 건립하였으 1950년 10월 20일 용산고에서 출정식을 하고 포병으로 참전한 서울 지역 학도병 34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매년 6월과 10월 이를 추모하기 위해 행사도 진행됩니다. 


우리나라는 군인만이 아니라 아이와 여성을 제외한 거의 전 국민이 학도의용군, 유격병, 전시노무자 등으로 국가를 지켰습니다. 세계 전쟁사에서도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IMF 금모우기 운동, 금융위기 극복 등 우리국민들은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하는 위대한 민족입니다. 벌써 반년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해 나라 안팎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 조금만 더 참고 협력해 이번 위기도 잘 넘길 거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