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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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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함께

언택트시대 박물관 견학, 온라인서 6·25전쟁을 만나다

2020.12.24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어느덧 1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방역 당국은 장기화된 코로나19에 대응하여 5단계로 개편된 방역지침을 제시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상황이 나아져 방역 단계가 1단계로 내려가면 박물관에도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 나아져 ‘생활 속 거리 두기’ 단계로 들어가더라도 불안감은 쉽게 해소할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연일 확진자 뉴스가 나오는지라,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을 이용하기 꺼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박물관을 전과 같이 쉽게 방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6·25 전쟁을 기억하고 체험할 수 있을까요? ‘온라인 전시’,‘VR’은 이 고민에 해답을 제시합니다. 이번 기사는 집에서도 체험할 수 있는 전시에 대해 알아보고, 방문기를 적어 관람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럼, 첫 번째 박물관부터 관람을 시작할까요?

 

1. 전쟁기념관 : 온라인 기념관
전쟁기념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온라인 기념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6.25 70주년 특별전을 비롯한 다양한 하위 옵션이 있습니다. 온라인해설, 온라인교육, 유물을 만나다, 문화쌀롱, 오픈아카이브, 콜롬비아 사진전이 그것입니다. 이번에는 6.25 70주년 특별전만 살펴보겠습니다. 

 

[6·25 70주년 특별전 : 사람-을 만나다 ]


6·25 70주년 특별전은 6월 24일부터 9월 27일까지 열린 특별 기획전입니다. 이미 전시가 끝난 상황이지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영상은 여전히 관람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총 28개의 영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별전에 준비된 글을 전부 다 소개하는 것은 관람의 즐거움을 해치는 일이니 임의로 몇 가지만 꼽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쟁의 첫 소식을 알린 아나운서, 위진록


첫 번째 영상의 주인공인 위진록 선생님께선 1928년에 출생하셨습니다. 또, 22세였던 6월 25일 오전 6시에 북한의 남침을 최초로 방송한 아나운서입니다. 동영상은 위진록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북한 공산군은 38선 전역에 걸쳐서 전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우리 국군이 건재합니다.”

 

위진록 선생님의 발화 이후로는 당시 상황 설명이 이어집니다. 위진록 선생님께서 1950년 6월 25일 새벽 숙직 근무를 하는데, 4시 30분에 육군 장교가 찾아왔습니다. 육군 장교는 오늘 새벽 공산군이 38선 전역에 걸쳐서 침공을 시작하였으니 방송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매일 교전이 있던 당시인지라, 실감 나지 않는 현실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안일하게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부정하기라도 하듯이 26일 밤에는 동두천 포소리를 서울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국민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위진록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안전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흔히 ‘안전불감증’이라고 하죠? 그 어느 것을 대더라도 전쟁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가벼운 것이 때로는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사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반전(反戰)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전쟁은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영상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전쟁터로 온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


이번 글에서는 노라 노 선생님의 이야기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라 노 선생님께서는 1928년에 출생하셨고, 19세에 미국에서 ‘프랭크 왜곤 테크니컬 컬리지’를 졸업하셨습니다. 그 후 22세에 부산으로 피난하시고, 23세에 퇴계로에 의상실을 개업하셨습니다.

 

사람의 직업은 사람에게 자아실현의 창구가 되고, 자아효능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직업은 인간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특정 직업을 선택한 걸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떨까요? 영상은 노라 노 선생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인생에 딱 한 번, 전쟁 때 패션 디자이너가 된 걸 후회했습니다.” 

 

2년간 유학 생활을 한 후 한국으로 돌아온 노라 노 선생님. 그러나, 의상실의 개업 직후 전쟁이 발발합니다. 사업을 중단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어요. 저라면 슬퍼서 아무것도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 와중에서도 전쟁 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전 병원에 가 통역을 돕기로 하셨습니다. 미군 부대에 가서 마취약 같은 기본 약품을 얻어오는 일도 하셨습니다.

 

당시의 한국은 패션 관념도 희박하고, 먹고 사는 문제도 급박한 데다 전쟁이 날 거라는 소문도 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에 와 남들이 못하는 공부를 했으니 고국으로 돌아가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의지로 한국에 돌아오셨던 것입니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소망과는 달리, 전쟁이 발발하고 나니 패션은 원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부상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라 노 선생님은 “패션 대신 의학을 배웠다면 사람들을 살렸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라고 말씀하시며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것이 패션 디자이너가 된 것을 후회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전쟁기념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별전 자료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소개한 글 외에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글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꼭 확인하길 바라요.


사실, ‘위로부터의 역사’, ‘대문자의 역사’로 압축된 글자만으로는 그 속에 숨은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전쟁 중에도 사람은 살아갔을 것인데도 말이에요.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라는 문장보다는, 당사자의 이야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더 생동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이 역사서들의 재단 방식에 의문을 느낀 적 있다면 더욱 이 전시를 추천해 드려요. 저에게는 여러 가지를 고찰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녹슨 철망을 거두고 


6·25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박물관에서 전시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녹슨 철망을 거두고’ 역시 6·25 전쟁 70주년을 주제로 한 특별전입니다. 이 전시는 오프라인 전시와 온라인 전시를 함께 진행 중입니다. 오프라인 전시는 6월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에서 진행되고 있으니, 직접 전시를 보고 싶은 사람은 참고하길 바랍니다.

 

전시관의 입구에 가장 가까운 곳에는 ‘38선’을 주제로 한 글이 벽에 적혀있습니다. 이는 1부의 주제와 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이 글에 따르면, 원래 38선은 신분증 검사만 하면 오갈 수 있었으나 점차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경계선이 되어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글 외에도, 박물관 내에는 전시품이 존재합니다. 비록 실제로 볼 수는 없지만 깔끔한 화면에 전시품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설명이 적혀있어 그것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예로 ‘국민증’ 전시품을 보겠습니다. 온라인에서는 두 개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국민증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발행한 것으로, ‘국민반’이라는 주민 통제의 기본 조직이 있었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증과 비교하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예요.



 

전시는 2부 ‘1950년 6월, 전쟁과 흩어지는 가족’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에 사람들이 그저 교전일 것이라며, 곧 끝날 거라고 생각하였던 6.25 전쟁이 3년간 이어졌습니다. 2부 전시에서는 6·25 전쟁 발발 이후의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1950년, 6·25 소식을 전해준 라디오, 6·25 전쟁 발발 당시 서울에 살던 인물의 일기, 북한 인민군 남침 기사 등, 전쟁 이후 민간인들의 일상을 추측할 수 있는 전시품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중국 인민지원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피난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사람들은 전쟁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가지 않았습니다. 그 양상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지요.

 

압축된 분량으로 내용을 전달해야 하기에, 저는 2부까지만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의 전시도 알차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관람이 모두 끝난 후에는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 철창이 부서지는 영상이 재생됩니다. 사람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만, 동시에 그를 끝내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전쟁 이후 세대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 ‘6·25 전쟁 VR 체험전’ 


6·25 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는 사업의 성격에 맞추어 ‘VR 체험전’을 준비하였습니다. 아직은 홈페이지에서 공식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리 정보를 알아 둔다면 곧 다가올 정식 체험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이 체험전은 휴대폰 혹은 VR기기가 있으면 더욱 편하게 관람할 수 있으니 그 점을 꼭 유의해두세요. 

 

이 영상은 6·25 전쟁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콘텐츠입니다. 관람을 시작하면, 아이의 천진난만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주인공은 어린아이인데,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야 함에도 아버지가 만들어 준 종이비행기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쟁통에도 순진무구한 아이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장면이 바뀌고 카메라는 이 가족의 피난길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곳으로 향하는 걸 보면, 전쟁은 정말 많은 이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 


 
피난 중에 공격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치거나 울부짖는 모습도 등장합니다. 별이 가족이 드디어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라? 아빠가 타지 못했는데 기차는 출발해버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 후 아빠와 별이 가족은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이후 공개될 영상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70년 후가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날린 종이비행기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대한민국을 지켜준 아빠에게 감사해하는 어린아이의 음성이 재생됩니다. 6·25 당시, 군대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더욱 많은 이가 다치고,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이 영상에서는 전쟁의 비극을 언급하는 동시에, 전쟁 당시 국군의 수고에 감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09년 강원도 인제에서 발굴된 김영인 육군 결사유격대원의 아들, 김해수 씨의 발언으로 재구성된 이야기입니다. 

 

영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의 건물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카메라는 도로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다 이내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노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인은 70년이 지나도록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면은 7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끼리 싸우는 모습, 닭이 우는 소리, 밥 먹으라고 어머니가 외치는 소리는 정겨운 흥취를 그려냅니다. 정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돌연 전쟁은 그 그림자를 드러냅니다. 아버지가 주인공 동철이에게 얼른 부산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가족은 전쟁 탓에 이별해야만 해요.

 

피난을 가는 와중에도 전쟁은 그치지 않습니다. 총알이 튀고, 폭발이 일어나 연기가 산을 메웁니다. 그런 일이 거짓말인 듯 낮은 평화롭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말이에요. 우리에게도 익숙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 뒤로 걱정스러운 어른들의 목소리가 중첩됩니다. ‘동철이’는 아버지를 계속 기다리다가 마침내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와 가족의 상봉은 관람객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그 후는 전쟁 화면이 그려집니다. 이 공간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푸르른 녹음도, 빛나는 햇살 같은 즐거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뒤이어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노인은 그를 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바탕이 된, 김영인 유격대원 귀환 행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영상은 끝나게 됩니다. 참전 영웅의 조국 수호를 위한 용기, 그리고 그 위업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는 122,609개.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영상이었습니다.

 

기억하고, 끊임없이 말하는 것은 모든 일에서의 첫걸음입니다.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비록 역병으로 인해 집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기억’을 위한 노력은 필요할 것입니다. ‘기억’을 위한 공간, 박물관에 가기 어려워진 것은 비극적입니다. 하지만, 여러 박물관에서는 이에 대응하여 다양한 비대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금,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기억’ 그다음에는 어떤 움직임이 필요할까요? 사람마다 견해가 다양하겠지만, 저는 우리 민족 전체에게 남은 전쟁의 상흔을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6·25 전쟁은 전쟁을 겪은 이에게도, 그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로 남아있습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한 평화 운동이 연고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