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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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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의 6·25전쟁 첫 교전 기리다,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2020.12.30

 

6·25전쟁은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됐습니다. 북한군은 오랜 시간 전쟁을 준비하다 남한의 병력 수준과 경계가 허술해지는 순간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병력은 물론 장비와 무기 수준에서 많은 전력 차가 났던 터라 남침 후 파상 공세를 벌인 북한군은 빠른 속도로 전방과 수도권을 함락시킵니다. 이어 유엔군 참전이 공식화됩니다. 스미스 중령이 이끈 미 21연대 1대대는 1950년 7월 1일 부산으로 입항해 전선에 투입된 후 지금의 오산시 북방인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입니다.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은 경기도 오산시 외삼미동 600-1일원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충시설이자 공립박물관인 유엔군초전기념관과 스미스평화관, 공원시설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일대를 통틀어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2020년 7월 5일 정식으로 개장한 행사에서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이 성대하게 열려 그 의미가 컸습니다. 지난 6년간 국가보훈처와 국방부, 경기도, 오산시 등이 마음을 모은 결실이자 남북화해 협력의 장, 한미동맹의 상징적인 장소로 탄생한 평화공원의 개원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평화공원에서 가장 먼저 찾고 싶었던 ‘구 초전기념비’에 도착했습니다. 1955년 7월 5일 미 24사단과 장병들에 의해 건립된 기념비로, 최초로 북한군과 교전을 벌인 스미스 전투부대 540인을 기리기 위해 540개의 돌로 쌓은 기념비라고 합니다. 

 

기념비 앞 비문에는 ‘1950년 7월 5일 이 자리에서 미 제24보병사단 소속 제21보병연대 및 제52야포대대 A중대로 구성된 스미스 전투부대 406명의 장병이 미 합중국 군대와 공산침략군 간의 최초의 전투를 개시했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노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비문에 새겨진 406명은 포병을 제외한 보병을 가리킵니다. 참고로 이 전투에서 한국군 17연대 9중대가 인근 갈곶리에서 스미스부대와 연합 작전을 벌인 곳이며, 스미스부대와 함께 북한군의 남하를 목숨바쳐 지연시킨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구 초전기념비’ 앞에는 안내문이 배치돼 있습니다. 주변에 공원이 조성돼 있습니다. 오산 시민들은 물론 수도권 거주자들이 많이 방문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명소로 떠올랐습니다. ‘박물관을 품은 역사공원’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립니다.

 

 

 

구 초전기념비 옆에 독특하게 생긴 조형물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죽미령 평화공원 상징 조형물’이 새로 건립돼 있습니다. 첫 교전이 벌어진 7월 5일 오전 8시 15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치열했던 6시간 15분간의 전투를 상징적인 형상으로 나타내고, 유엔군 소속 스미스 특수부대의 고귀한 희생으로 이뤄낸 오늘의 평화를 밝은 이미지의 다채로운 색감으로 표현한 조형물입니다.

 

 

 

평화공원 개장 당시 스미스평화관 건립은 큰 화제였습니다. 단순한 전시관 건립을 넘어 외관을 유명 미술관과 같은 느낌으로 건립됐습니다. 70년 전 스미스 부대원의 발자취를 따라 VR 체험을 할 수 있는 멋진 공간으로 탄생했습니다. 스미스 부대 주인공인 찰스 스미스 중령이 전쟁 당시 이동하던 동선에 따라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후 대전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이후 격전지인 죽미령까지 오는 과정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유엔군초전기념관 앞 광장에선 상설전시 방식으로 운영 중인 야외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전투기, 전차, 장갑차, 박격포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가족 단위로 평화공원을 찾는 이들이 많아 야외에 다양한 군사 무기와 장비를 전시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은 전쟁기념관처럼 느껴집니다. 장비마다 자세한 설명과 제원 등이 안내돼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 초전기념비’를 보기 위해 참전국 국기게양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유엔 참전국들의 국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국기 하단에는 참전 배경과 참전 규모, 대표적인 전투, 사상자 등이 자세히 표기돼 있습니다. 정말 작은 ‘전쟁기념관’ 같았습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참전국과 참전군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신 초전비’는 ‘유엔군 참전비’ 혹은 ‘신 초전기념비’, ‘신 유엔군 초전기념비’ 등으로 불린답니다. 1982년 4월 6일 전적지 개발계획에 따라 당시 교통부와 경기도가 건립했습니다. 매년 7월 5일을 기념해 죽미령 전투의 의의를 기리며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는 추념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구 초전기념비’에 비해 훨씬 더 역동적이고 결의에 찬 당시 스미스부대 장병들을 표현했습니다. 

 

 

 

‘신 유엔군 초전기념비’ 바로 옆에 오산 죽미령 전투의 전황도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당시의 스미스부대 작전 장교가 전투를 설명해주듯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죽미령 전투는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스미스부대의 패배가 맞지만 당시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북한군의 남진을 확실히 저지시켰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유엔군이 참전하면 북한군은 자연스럽게 퇴각할 것이라는 약간의 오판도 분명 있었습니다. 상대편과의 교전에서 ‘적정’ 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교훈을 충분히 겪은 전투였습니다.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개장으로 국가현충시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현충시설을 공원화해 명소가 된 교과서 같은 장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6·25전쟁은 3년의 전쟁 기간 동안 다양한 이슈가 있었지만 오산 죽미령 전투 같은 기념비적인 전투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오산에 올 기회가 있으면 가족과 함께 평화공원을 가장 먼저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