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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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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 전쟁의 흔적을 좇아서 “역사는 기억이자 상징이다”

2020.12.30

안녕하세요. 6·25전쟁 70주년 사업 국민 서포터즈 박찬준입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덧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무수한 세월이 흘렀지만 6·25전쟁이 한반도에서 발발한 사건인 만큼 그와 관련된 장소에는 아직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종전 후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날 6·25전쟁의 흔적을 담고 있는 장소는 그 자체로 사건을 상징하고, 시간이 지나도 6·25전쟁에 대한 기억을 존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소를 우리가 잘 보존하고, 기념하는 것은 6·25전쟁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영속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6·25전쟁은 한반도 전역에서 발생했고, 이와 관련된 상징적인 장소는 전국에 분포해 있습니다. 이런 장소를 직접 방문해본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고, 우리의 이동이 제한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사문화경관 서비스를 통해 온라인 답사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온라인으로 가보며, 6·25전쟁의 흔적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역사문화경관 서비스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증명하는 다양한 사료의 수집·관리, 서비스를 통해 역사 기록 자원을 기반으로 근현대사 연구와 문화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구축된 서비스입니다. 

 

역사문화경관에선 전국의 약 550개 문화유적 사진과 정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수도권·충청남북도·전라남북도·경상남북도·제주도 등 권역별로 문화유적을 정리한 것이 특징입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홈페이지를 찾아 접속한 후 현대사 아카이브에서 역사문화경관을 클릭하면 바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역사문화경관 서비스에선 약 550개 문화유적을 살펴볼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전국 곳곳의 6·25전쟁과 관련된 유적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장소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장소는 강원도 양구 도솔산 전투지입니다.

 

도솔산 전투지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있습니다. 도솔산 전투는 1951년 6월 4~19일 펼쳐진 전투로 중동부 산악지대에서 중공군 6차 공세를 저지한 중요한 전투입니다. 해병대 5대 작전 중 하나로 이 전투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이 격멸됐습니다. 이 작전은 해병대가 큰 활약을 보인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를 계기로 해병대는 ‘무적해병’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저는 푸르른 산 위에 높게 뻗은 전투 위령비를 보면서 ‘웅장하면서도 숭고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격렬했던 전투였던 만큼 해병대원 123명이 전사하고 4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이 전투에서 죽고 다친 해병대원 모두가 위령비를 보면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저는 위령비 주변을 둘러싼 깃발들이 위령비를 수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 도솔산 전투지가 더욱 인상깊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충남에 자리한 구 충남도지사공관입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건물 같지만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수도를 지정한 후 머물렀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대통령은 수도였던 서울을 벗어나 대전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이런 긴박한 순간에 대통령이 임시로 머물렀던 공간이 바로 구 충남도지사공관입니다. 

 

구 충남도지사공관은 6·25전쟁의 성격을 뒤바꾼 사건이 벌어졌던 공간입니다. 정부가 유엔군 참전을 공식으로 요청하면서 이곳에서 재한미국군대 관할권에 대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 협정이 조인됐습니다. 즉 유엔군 참전이 이곳에서 공식화된 것입니다.

 

저는 이 건물을 보면서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이 6·25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지 상상해봤습니다. 북한군은 선전포고 없이 기습 공격을 했기 때문에 우리 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후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쟁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로 맞섰습니다. 저는 이 장소가 ‘당시의 긴박함과 싸우고자 하는 용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 장소는 바로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입니다. 한국 최초의 해병대 훈련 시설입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우리 군은 제주도 출신으로 구성된 한국 해병대 3기와 4기를 이곳에서 단기 훈련했고, 이후 이들은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습니다. 이들은 서울 수복 전투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습니다. 

 

1950년 8월 3일 제주도 북국민학교에서 입교식을 진행한 후 해병대에 입대한 여자 교사와 여학생 126명 중 100명이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에서 훈련을 했습니다. 이들은 해병대 훈련 수료 후 실무부대에 배속됐습니다. 6·25전쟁 기간 이 훈련소에서 많은 해병대원이 힘든 훈련을 마친 후 각 전선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쳤습니다.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은 이처럼 6·25 전투 당시 전국 곳곳에서 활약하였던 해병대를 배출한 기념비적인 장소였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장소는 경북 영천시에 있는 영천지구 전투지입니다. 1950년 9월 국군 2군단 예하 7사단과 8사단이 영천 점령을 기도한 북한군 15사단을 맞아 공방전을 벌이다 영천을 확보한 영천 전투를 기념하는 장소입니다. 영천 전투는 9월 5~13일 벌어진 전투로 영천이 당시 전략적 요충지라 치열한 공방이 오갔습니다. 만약 방어에 실패해 대구로 가게 되면 북한군이 그대로 다부동 일대의 미군과 국군에게 진격할 수 있고, 경주로 가면 부산교두보가 위험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국군은 두 차례의 공방전 끝에 낙동강 방어선을 고수합니다. 1958년 10월 20일 영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육군 1205건설공병단이 영천지구 전승비를 세웠습니다. 전승비명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것입니다. 저는 영천지구 전투지를 지키고 있는 비석이 70년 전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호국영령과 같이 ‘굳세고, 우직하고, 용감하게’ 보였습니다.

 

이렇게 역사문화경관 서비스를 이용한 6·25전쟁 온라인 전적지 답사가 끝났습니다. 어떠셨나요?

 

저는 아직도 대한민국 곳곳에 6·25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소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우리의 기억과 실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역사적인 흔적을 품고 있는 장소는 실제 역사적인 사건이 발발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큰 현장감과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역사책에서 도솔산 전투에 대해 읽고 공부하는 것보다 실제 도솔산 전투지를 방문하면 70년 전 역사에 대해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장감과 감동 그리고 울림이야말로 오늘의 우리가 6·25전쟁 전적지를 잘 보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소중한 장소를 잘 보존해나간다면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6·25전쟁에 대한 기억은 살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