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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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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함께

해도근린공원 덕수근린공원을 가다, 공원서 만난 포항의 호국 영웅

2020.12.30

 

1만 5343명 사살, 3722명 생포. 6·25전쟁 당시 포항 전투(8월 9일~9월 22일)에서 한·미 연합군이 올린 혁혁한 전과입니다. 하지만 아군의 희생도 컸습니다. 무려 2301명이 전사했고 4040명이 실종됐으며 부상자 수도 5908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한 달여 동안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포항에서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포항 전투는 6·25전쟁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파죽지세에 있던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지요. 포항 전투에서 온몸을 던져 호국을 실천한 이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반격은커녕 부산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컸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포항에서 벌어진 전투는 말로 형용하기 힘든 어려운 싸움이었다고 생존자들은 전합니다. 북한군의 공격 기세는 포항 전투 패배로 수그러들었고, 단숨에 부산까지 점령하려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으니까요. 반면 한·미 연합군은 포항 전투를 계기로 전세를 반전시켰습니다. 북한군의 총공세를 한 달 이상 저지하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재정비하고,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간 전략적 요충지로 시대적 사명을 꿋꿋이 실행해 온 포항이 다시 한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호국을 실현했으니 포항시 곳곳에 6·25전쟁과 관련한 추모 시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포항의 호국 시설 두 곳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해도근린공원에 자리한 ‘고 연제근 영웅 특공결사대군상’입니다. 

 

형산강 도하작전의 호국영웅 고 연제근 상사 특공결사대상.

 

포항시 남구 해도근린공원에선 포항제철소 전경과 형산강 다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포항 탈환은 물론 북진 추격의 교두보를 마련한 형산강은 혈산강으로도 불립니다. 그만큼 많은 피를 쏟은 역사적 현장입니다. 연제근은 바로 6·25전쟁 당시 형산강 도하 작전을 승리로 이끈 호국 영웅입니다. 

 

연제근 영웅 특공대 군상은 ‘조국의 부름에 노도처럼’이라는 부제와 함께 당시 연제근 상사가 특공대원과 함께 적진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는 모습을 현실감 있게 형상화했습니다.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2010년, 형산강 도하 작전에 승리한 9월 17일 세워졌다고 합니다. 6·25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투철한 군인 정신을 발휘한 연제근 상사의 아낌없는 희생을 되새기며 헌화와 함께 묵념을 올렸습니다.

 

고 연제근 이등상사 공적비. @증평군 

 

6·25전쟁 당시 형산강은 중요한 전투 요충지이자 교두보 역할을 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형산교는 포항으로 통하는 유일한 교량으로 작전상 없어서는 안 될 다리였기 때문에 폭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량을 확보하려면 치열한 전투가 불가피했기에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형산강은 1950년 8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44일간 전투에서 2,301명이 전사한 격전지였습니다. 특히 1950년 9월 17일 새벽 연제근 육군 이등상사와 12명의 분대원이 형산강 도하 작전의 최선봉에 나서 적군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포항 탈환과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해도근린공원에 자리한 6·25참전 유공자 명예선양비. 

 

6·25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3개월도 안 돼 낙동강 방어선마저 무너뜨리고 포항 일부와 부산을 탈환하기 위해 국군과 대치합니다. 전선이 포항 형산강 일대까지 밀리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이 단행된 다음 날인 1950년 9월 16일, 최전선의 전황이 급변하면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 도처에서 동요하기 시작하자 아군은 총반격에 나섭니다. 

 

적의 화력이 급격히 약화됐을 무렵 “형산강을 도하해 포항을 탈환하라”는 3사단의 공격 명령이 하달되자 연제근 상사가 이끄는 분대는 9월 17일 새벽 4시,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가르며 강을 건너 적진 가까이에 이릅니다. 하지만 북한군 기관총에 분대원 9명이 전사했습니다. 연제근 상사는 적의 사격으로 어깨가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지만 적의 기관총 진지를 향해 3발의 수류탄을 투척해 궤멸시켰습니다. 포항 탈환의 결정적 공훈을 세운 연제근 상사는 안타깝게도 적군의 총탄에 맞아 24세의 나이로 산화하고 맙니다. 

 

정부는 고인의 전공을 기려 2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1950년 12월), 화랑무공훈장(1951년 8월), 무공포장(1956년 10월)을 추서했습니다. 유해는 고향에 봉안됐다가 1982년 3월 24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고 합니다. 

 

덕수근린공원 충혼탑.

 

두 번째 소개해 드릴 포항의 호국 시설은 포항시 북구 덕수동 산 4-3번지에 있는 덕수근린공원 충혼탑입니다. 공원은 면적이 45만 4,650㎡로 휴양과 운동 시설을 겸한 녹지로 구성돼 있는데요. 바로 이곳에 포항 전투에서 전사한 2301명의 위패 봉안실이 있습니다. 

 

덕수근린공원에 자리한 위패봉안실 입구.

 

덕수근린공원 충혼탑을 가려면 포항 북구청에서 포항세무서 쪽으로 이동해 세무서 건너편 포항초등학교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안내판이 보입니다. 잘 정비된 오르막길을 오르면 작은 정자와 충혼탑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위패봉안실과 충혼탑이 있는 덕수근린공원은 수도산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예전에는 모갈산으로 불렸다고 하네요. 

충혼탑은 6·25전쟁 당시 전사한 포항 출신 2068위의 호국영령 위패를 모시기 위해 1964년 6월 25일 건립해 세 차례 개축과 확장을 했다고 합니다. 2013년도 6월 21.5m 규모의 충혼탑, 군인 6인상 2개와 부조 1면, 위패봉안실, 부대시설 등을 새롭게 조성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위패봉안실 내부. 

 

충혼탑 앞 양쪽에 당시 참전했던 군인 6인상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길을 끕니다. 충혼탑 뒤편에 마련된 위패봉안실에는 6·25전쟁사와 치열했던 포항 전투사를 알기 쉽게 도표와 시청각 자료를 통해 안보 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알차게 꾸몄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포항지역 호국영령 이름이 새겨 있어 전쟁의 아픈 흔적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덕수근린공원 내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

 

특히 도심에 위치해 초등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위해 많이 찾아오고 시민 휴식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충혼탑에서 헌화한 후 오른편 언덕을 오르면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