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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에 점령됐던 룩셈부르크… 한국의 자유 지키려 싸웠다”

2020.11.19 조회수 412

[6·25 70년, 아직도 아픈 상처]
참전국 대사 인터뷰 [11] 피에르 페링 주한 룩셈부르크 대사

 

양승식 기자

 

 

피에르 페링 룩셈부르크 대사가 지난 12일 서울 룩셈부르크 대표부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페링 대사는 “룩셈부르크는 자유를 잃은 심경을 잘 알았기 때문에 파병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인구 62만 룩셈부르크는 1950년 6·25 전쟁에 전투병 100명을 파병했다. 룩셈부르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병 파병이다. 당시 인구는 지금보다도 더 적었다. 하지만 유럽의 작은 국가인 룩셈부르크는 자유를 잃었을 때의 심경을 어느 나라보다 잘 알았고, 역사상 유례 없는 파병을 결정했다.

 

피에르 페링 주한 룩셈부르크 대사는 지난 12일 본지 인터뷰에서 “불과 5년 전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직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룩셈부르크는 6·25 전쟁 파병을 주저하지 않았다”며 “독일에 점령됐던 룩셈부르크도 미국 등 우방국의 도움을 통해 해방됐고,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룩셈부르크는 6·25 전쟁 동안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병력인 100명의 전투병을 파병했고, 이 중 15명이 전사하거나 다쳤다. 서울 탈환 작전에 참가했고, 임진강 전투에 참전해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내기도 했다. 페링 대사는 “인구 대비로 얼마나 많은 군인이 참전했는가는 중요치 않다”라며 “모든 유엔군 참전국이 동등하게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게 중요할 뿐”이라고 했다.

 


페링 대사는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25 전쟁 왜곡 발언을 한 것에 대해 “6·25 전쟁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고 교과서에서,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6·25 전쟁은 룩셈부르크에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유를 위해 싸운 전쟁으로 기억된다고 페링 대사는 밝혔다.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는 지난 6월 25일 6·25 전쟁 70주년 행사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룩셈부르크는 대한민국의 자유 회복에 우리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피에르 페링 룩셈부르크 대사가 지난 12일 서울 룩셈부르크 대표부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페링 대사는 6·25 전쟁 70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묵묵히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북한은 6·25 전쟁뿐 아니라 지난 7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항공기 폭발 사건 등 많은 일이 더 있었다”며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국의 우방국인 룩셈부르크는 한국 정부를 믿고 북한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주일 룩셈부르크 대사이기도 한 페링 대사는 북한 등에 맞선 한·일 관계 회복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모두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며 “자유 민주주의 국가 간 관계 회복은 시간문제일 뿐이며 양국의 지식인들이 현 상황 극복 방안을 찾아낼 것”이라고 했다.

 

페링 대사는 지난 11일 오전 11시 전 세계가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에 참석했다. 턴 투워드 부산은 6·25 전쟁에 참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1분간 유엔기념공원 방면을 향해 묵념하는 행사다. 페링 대사는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을 때 ‘we are here(우리가 여기 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봤다”며 “그곳에 묻힌 분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감상에 빠지게 됐다”고 했다. 그는 “70년 전 룩셈부르크는 한국을 도와줬고, 우정을 쌓았다”며 “미래에도 양 국가는 친구로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공동 기획 :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 조선일보